재잘재잘+ㆀ/'사랑이사랑에게'

숫자에 약한 여자 편..

miniwind 2006. 10. 3. 19:39

내가 원래 숫자에 약하거든요.
가끔 내 전화번호도 헛갈리니, 말 다 했죠.
근데, 근데 말이에요.
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숫자가 있습니다.
그와 헤어진 날짜요,
오늘만 되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서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아요.
그 전날부터 이상 현상까지 일어난다니까요.

어제는 식탁 위에 지갑을 두고 나간 것도 모르고,
글쎄,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을 한 거예요.
다행히 사정을 말씀 드리니까 송금해 달라고 하셔서
겨우 택시에서 내렸습니다.
그런데 아직 요금을 못 보내드렸어요.
계좌번호 적은 쪽지를 어디에다 뒀는지 기억이 나야 말이죠.
아마 괘씸해하고 계시겠죠.
믿고 보내줬는데 말이에요.

만약에요, 그가 혼자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말이에요,
그때 믿고 보내주지 않았으면, 그랬으면..헤어지지 않았을까요?
유학간지 1년 만에 그가..우리의 이별을 이메일로 통보해왔어요.
그게 마지막이었어요. 그 이후로 전화 한 통 없었으니까요.
그 사람과 나, 참 많이 닮았었는데..
하나의 심장을 나눠가진 사람처럼..
영활 보고 나면 똑같은 대사를 기억했고..이런 일도 있었어요.
같은 날, 다른 장소에서..따로 따로 휴대폰을 샀는데,
약속한 것처럼 똑같은 모델은 산거에요.
그 휴대폰이 바로 이건데요, 바꾸러 왔어요.
이 전화기 보고 있으면 그 사람 생각이 자꾸 나서요.
어, 근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.
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내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는데,
근데, 이거 내 벨소리 아니거든요.
수신자가 '소개팅녀' 로 뜨는 걸 보니, 확실하네요.
아마 나랑 나란히 서서 판매원 설명을 열심히 듣던
그 남자인 것 같아요.
아마 전화기가 똑같아서 자기 건지 알고..바꿔 들고 갔나 봅니다.
그 남자도 자기 휴대폰을 진열대 위에 올려놓고 있었거든요.
역시,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까..그 남자가 받네요.
친굴 만나기로 해서 빨리 갖다 줬으면 좋겠다니까,
자기도 꼭 들렸다 올 때가 있다면서..좀 기다려 달래요.
친구한테 좀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해야 하는데,
전화번호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.
그 사람도 나만큼이나 숫자에 약했었는데..
지금쯤 내 전화번호 같은 거 새까맣게 잊어버렸겠죠?


사랑이..사랑에게 말합니다.
가슴에 입력된 번호는 쉽게 삭제되지 않는다고,
날카로운 심장이 무뎌지면 그 때쯤 가물가물해 질 거라고..

++ http://radio.sbs.co.kr/sweet/에서 담아왔습니다...